베리드
2011. 1. 23. 20:46ㆍmy mbc/ciné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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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로드리고 코르테스가 처음 이 영화 시나리오를 들고 헐리우드 문을 두드렸을 때,
러닝타임 내내 관 속에 틀어박힌 남자 말고는 보여주는 게 없다니 뭐 어쩌쟈는 거냐며 거절당했었다고,
그런 얘기를 어디서 줏어들은 적이 있었는데,
라이언레이놀즈가 기적적으로 오케이를 해주셨다는 뭐 그런거였던 듯.
그래서 궁금했다.
그래, 뭐 어쩌자는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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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반 동안 영화는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가 있을 수 있는 비좁은 공간만을 보여주지만,
앵간한 블록버스터 스릴러 액션 영화보다 훨씬 더 긴장감 넘치고 흥미진진하다.
물론 흥미진진하다고 하기엔 불쌍한 주인공에게 좀 못 할 말 같기도 하고;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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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어떤 요소가 이렇게 미칠듯한 긴장감을 부여하느냐 하면,
바로 인간이다.
그가 속해 있던 사회의 사람들,
그를 이 지경으로 만든 다른 사회의 사람들,
그리고 그가 이 사건으로 인해 새롭게 연루 된 모든 사람들.
그를 미치게 만드는 건,
점점 희박해지는 공기도,
조금씩 떨어지는 모래도,
자꾸 흘러만가는 시간도 아닌,
바로 그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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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주인공과 연락이 닿는 모든 사람들을 통하여,
우리가 의심 없이 믿고 있는 인간 관계를 비웃고,
특히 그 잘난 미국 사회도 한껏 비웃는다.
내 뒤에서 의자를 계속 차대며 4D 감상을 도와주던 그 놈은,
늘상 개콘 방청객 버금가는 큰 웃음으로 호응하기도 했다.
네 이놈- 확 묻어버릴라.
세상을 향한 감독의 조소어린 시선이란,
정말 헛 웃음이 피식피식 빠져나오게 만드는 그런 것이어서,
정말이지 눈물이 다 날 뻔 했다.
당신들의 그 잘난 이념,
당신들의 그 잘난 원칙,
당신들의 그 잘난 시스템이,
한 사람, 혹은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한 번 보라고.
연락이 닿을 수는 있어도, 정작 필요한 소통은 할 수 없는,
당신들의 그 답답한 사회의 일면을 한 번 들여다 보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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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전화라는 게 진짜 웃기는거다.
오죽하면 무인도에 가져갈 수 있는 세 가지 물건 중 휴대폰이 꼭 들어갈 정도니.
인간 세상을 살면서 소통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지금 존재하는 무수한 매체들, 우리가 자유롭게 나다니며 사용하는 모든 것들도,
결국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이어주는 기능 외에는 뭐 별 다른 기능이 없지 않나.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소통을 위한 매체 및 기기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단절시키는 생매장이란 건 정말 무서운 일이라는 생각이;ㅁ;
그러니까 이라크 납치범님들께서도,
그 사실을 느므나 잘 아신 나머지 빠떼리 만빵 채운 핸드폰을 같이 넣어주신 것 아닌가.
아이폰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살짝 생각했음
핸드폰과 함께 매장 당한 게 나을까,
차라리 아무것도 없이 매장 당한 게 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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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상담원 매뉴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면,
좀 더 열린마음으로 상담에 응하는 태도부터 만들어달라-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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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크레딧과 함께 흘러나오는 상콤발랄한 이 곡,
In the lap of a mountain.
이런 무서운 영화를 만드신 감독님께서 직접 만든 곡이라니 놀랍다.
엔딩곡으로 반전을 노래하시는 분.
노래 끝에 이어지는 박수 소리는,
자신의 영화를 위한 박수인가-_-
왠지 노웨어보이에서 흘러나올 법한 고론 느낌.
17/01/11
@UGC les hal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