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르 - 미카엘 하네케

2013. 1. 3. 12:02my mbc/cinéma

#.
사실은 노인들이 나오는 영화 마음 불편할 것 같아 보고싶지 않았는데,
새해의 시작을 함께했던 '퍼니게임'의 미카엘 하네케 감독 작품이라고 해서,
마음을 바꾸고 다시 봤는데 역시나 노인들이 나와서 마음 불편했던 영화-_-

#.
이 영화는 죠지와 안느, 두 명의 사랑하는 노부부가 여생을 함께하는 이야기다.

문제는 부인 안느의 건강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했는데 망하는 바람에,
신체 오른쪽이 마비되어 거동이 불편해졌다는 것.

언제가 될 지 모르는 죽을 날만을 기다리면서,
그래도 조금은 나아질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로,
본인 몸 가누기도 힘들어보이는 고령의 할아버지가 사랑하는 부인을 챙기는 모습.

그걸 보고 있자니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더라.


#.
문제 1.

안느의 병환이 깊어감에 따라 수치심 들 법한 상황들이 계속 발생하는데,
여자로서, 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 얼마나 불편한 일이란 말인가.

2-30대에 만나 사랑하게 된 남자가,
80대에도 변함없이 날 사랑해주고 의지가 될 사람이라는 그런 확신은 어디서 오는걸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한 없이 약해지고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끝까지 그 곁을 지키며 헌신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은 어디서 오는걸까.


#.
문제 2.

아무리 서로 사랑하는, 행복한 모습의 노부부라고 해도,
큰 집에 덩그러니 둘만 남아 밥을 차려 먹고, 공연을 보러 다니는,
움직임의 속도 자체가 어딘가 안타깝고 안쓰러운 느낌이다.

하지만 그저 늙었다는 이유로 그런 안타까운 시선을 받기엔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그들은 어쩌면 지금의 나보다도 치열하게 그들의 젊음을 보냈고,
이제는 그들에게 남은 시간을 그저 여유있게 보내고 있을 뿐인데,
그렇게 그들에게 남은 행복을 만끽하고 있을 뿐인데,

한낱 30살 조무래기에 지나지 않는 내가 그들의 삶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건방진 젊음이란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
문제 3.

앞으로의

내 인생은,
우리 엄마아부지 인생은,
우리 할머니 인생은,

어떡하지.


#.
영화에서 안느가 인생에 대해 말하길,

하나는 C'est beau. 아름답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C'est longue. 길다는 것이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나는,
위에서 느낀 그런 확신의 부재와 DIE YOUNG에 대한 갈망으로 머리가 아파온다.

과연 어떻게 살아야 늙어서도 행복하게, 모자람 없이, 즐겁게 살 수 있을까


#.
미카엘 하네케 이 무서운 사람.
 
연초에는 퍼니게임으로 내 심장을 쫄깃쫄깃 옥죄어 오더니만,
이번엔 어지간한 호러보다도 더 무서운 우리네 인생을 조용히 보여주는 것 만으로도,
내 머리를 충분히 아프게 했어.

두 개 영화에서 느껴지는 그의 스타일 1.
영화는 간간이 연주되거나, 플레이 되는 클래식을 제외하고는 음악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퍼니게임에서도 무서운 분위기의 음악으로 긴장시키는 게 아니라,
정말 찍 소리 하나 안 나는 고요함으로 나를 긴장시키더니만.

아무르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그 몇 분 동안의 적막 때문에 너무 먹먹했다.


스타일 2.
말하고 있는 주인공의 등짝을 보여주는 컷이 많은데,
이건 주인공이 보고 있는 걸 같이 보는 것보다도 더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공포영화에서는 더 심한 공포를,
드라마에서는 더 심한 동요를 끌어내는 것 같아.



p.s.
공개 된 스틸컷이 많지 않아서 예고편 영상을 하나 남겨둔다.


02.01.13
@씨네큐브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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