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13. 00:51ㆍmy mbc/ciné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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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응자 보러 아트하우스 모모 갔을 때 예고편하고 팜플렛으로 보고 꼭 봐야지 점 찍어뒀던 영화.
칸느영화제 심사위원대상도 받았고, 아카데미에서는 외국어영화상도 받았던데, 암- 그럴만도 하지- 고개가 끄덕여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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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존더코만도'를 설명하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엄청난 수의 유태인들이 여기저기서 실려오면, 남녀노소 구분 없이 옷을 벗겨 가스실에 몰아넣고 독살시킨 뒤, 쌓여있는 시체들을 치우고, 소각하고, 어마어마한 양의 재를 옮겨다 강에 뿌린다.
이 모든 과정에 필요한 인력을 수용자들 중에서 별도로 지정하여 관리하는데, 그들이 존더코만도라고 한다.
열차에 실려오는 유태인 무리의 5분후, 10분후 미래를 뻔히 알면서도, 그들에게 그 어떤 말 한 마디도 건네지 못 하고 묵묵히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
인간도 기계도 아닌 삶을 부여받아 다른 유태인과는 다르게, 아주 약간 더 긴 삶을 누리는 사람들.
이들에 대한 설명 한 문단 만으로 이미 먹먹해지는 가슴을 안고 곧이어 등장하는 주인공 사울을 만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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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등장부터, 사울이 자신의 아들을 발견하게 되기까지의 몇 분이 주는 인상은 매우 강렬하다.
우선, 처음부터 끝까지 정방형에 가까운 화면 비율을 유지한다.
또한 카메라는 주인공을 초근접 촬영하고 그 외는 모두 아웃포커싱 처리된다.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글을 찾아 읽어보니 무려 핸드헬드로 촬영했다고. 때문에 관객은 주인공의 시점에 거의 일치하는, 초근접 거리에 위치하게 되고, 화면 비율로 인해서 굉장히 제한적인 시야를 갖게 된다.
정말로 처음 몇 분 동안에는 적응이 안 되고 어지러워서 시선처리가 어려울 정도.
그러나 곧 화면에 적응을 하고 주인공의 움직임을 따라가다 보면, 이 화면 비율과 아웃포커싱이 얼마나 탁월한 선택이었는지 금방 이해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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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아웃포커싱 덕분에 나는 존더코만도의 작업장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고 있으면서도 다 본 게 아닌 것이 된다.
또한 주인공 사울에 완전히 포커스를 맞춘 화면은 독일놈이니 작업반장이니 하는 놈들에게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고, 여기저기 등덜미를 붙잡혀 끌려가고 떠밀리는 그의 모든 순간순간들이 마치 지금 내게 벌어지는 일처럼 매우 가까이 느껴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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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보여주는 하루 반나절 정도 되는 시간 동안 주인공은 나름 작업장 안팎을 비집고 다니며 고군분투 하는데,
매 순간마다 자신이 발을 딛고 서 있는 그 자리 그 곳에서 진행 중인 노역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기계처럼 수행하면서 그림자처럼 옮겨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든다.
도대체 얼마나 그 공간에서 닳고 닳아 무뎌졌으면,
도대체 언제부터 삶의 가치도, 희망도 없는 날들의 연속이었으면,
계속해서 머리를 굴리면서 상황을 계산해야 하는 이 급박하고 절박한 순간에도 수용자 무리에 뒤엉킨 채, 본능적으로 몸이 움직이는 대로 손을 놀리면서 노예처럼 귀신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있어도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움직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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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시각적 제한을 갖는 대신 청각적으로는 많은 것을 열어둔다.
작업장에서 수군거리며 이야기 하는 소리, 끌려온 유태인들이 웅성이는 소리, 우는 소리, 독일인이 고함치는 소리, 그리고 아들의 숨소리.
그리고 끊임 없이 돌아가는 작업장 소리, 아비규환과도 같은 구덩이에서의 소리, 강물 흐르는 소리, 그리고 아마도 빗소리였던 것 같은 엔딩 크레딧의 배경음까지.
사람과 배경이 주는 모든 소리의 틈새마다 은밀하고, 조용하고, 절박한 느낌이 박혀있다.
그리고 어느 부분에선가는 누군가의 오디오가 머리 뒤 쪽에서 들리는데 정말 헉 소리 나며 섬찟할 정도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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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를 잃은 지 오래 된 이들의 죽음만이 남아있는 공간에서, 자신을 찾아온 아들의 시신을 지켜내고 꼭 제대로 된 장례를 치뤄주겠다는 아버지의 결심은 미련하리만큼 굳세고 슬프다.
어쩌면 이것은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각성'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
게다가 매우 똑똑하게도 영화는, 이미 충분히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목 매는 주인공의 이야기에, 존더코만도 무리 일부의 반란 계획까지 얹어서 상황적 긴박감을 더함과 동시에, 이 아버지의 절박한 각성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엔딩크레딧 올라갈 땐 눈물이 핑 돌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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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 나오는 음악이 좋아서 검색해보다가, 위에서 언급한 초반 몇 분을 감독 코멘트 버전으로 올려둔 뉴욕타임즈 링크를 찾아내어 올려둠.
첫 장면이 임팩트 장난 없으므로, 영화관에서 보실 분들은 우선 영화를 꼭 보시고 나서 아래의 감독 코멘터리 들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p.s
마지막으로, 네이버에서 존더코만도 검색했더니,
비르케나우 수용소 - 유대계 루마니아인 의사의 증언 이라는 글이 나오길래 덧붙여 둠.
그리고 영화사 비트윈 에프앤아이 페이스북이나, 구글/네이버에 검색해보면 아마도 영화사에서 준비했었을 평론가 정성일 시네토크 원문이 올라와있는데, (글이 왜 이렇게 정리가 안 되어있나 했더니 시네토크 받아적은 글이었나 봄) 영화 보고 나서 읽어보면 나름 이런 저런 깨달음이 또 많이 생김.
MAR 2016
@아트하우스 모모
※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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