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림질을 했다.

2016. 5. 15. 14:11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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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장기여행을 떠나고 안 계시니 더 이상 세탁소 아저씨가 우리 집에 들르지 않으신다.

겨우내 입은 코트와 이젠 더워서 못 입을 봄철 아우터들 드라이를 맡겨야 하는데, 어무이한테 다 떠맡기고 동네 세탁소 전화번호도 내 손으로 눌러본 적 없이 살아온 지난 십수년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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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어무이가 떠나시기 전부터 난데없이 공기청정기 위에 포개져 있던 내 흰 블라우스가 눈에 띄었다.

벌써 몇 주 째 그 자리에 행주처럼, 수건처럼, 걸레처럼 놓여있었지.

힙라인을 덮을 정도는 아니지만 살짝 펑퍼짐하게 에이라인으로 내려오는 흰 블라우스는 마치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쓰던 팔 토시처럼 어깨 바로 및 부분부터 잔주름을 잔뜩 잡아 부풀어나는 소매 부분이 특징이다. 게다가 얇고 주름이 잘 지는 소재라 한 번 입고 나면 바로 세탁소에 보낼 수 밖에 없는 그런 옷이다.

그러나 왠지 오늘 처음 시작하는 프렌치 자수 클래스에 입고 가면 영락 없이 수 놓는 뇨자 코스프레가 가능해 질 그런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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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처음으로 다리미와 다림판을 꺼내었다.

다리미에 물을 넣고 스팀을 팍팍 쏘아가며 다릴 수 있는 테팔 스팀 다리미가 우리 집에 등장했던 건, 전선을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화재가 날 것만 같은 오래 된 구식 다리미를 한 20년도 넘게 쓰고 난 뒤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도 이미 십수년 전 일인 듯 하다.

혹시나 녹물이라도 옷에 쏟아지는 건 아닐까 걱정하며 스팀 테스트를 몇 번 해보았다. 다행히 별 이상은 없는 듯 하다.

흰 블라우스 외에도 귀찮아서 대충 구겨진 채 입고 다니는 몇몇 옷들을 꺼내어 다림질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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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흰 블라우스는 정말 다림질이 어려운 아이다. 소매의 잔주름은 하나하나 잡기 어렵고, 팔뚝은 날이 서게 반으로 다릴 수 있는 디자인이 아니며, 등판도 뭐 절개가 이리 들어갔는지 한번에 다려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 다리미가 수명을 다해가는지 아무리 짓눌러도 판판하게 다려지지 않는 주름도 있다.

문득 매일 밤 아부지와 딸들의 옷을 다리던 어무이가 생각났다. 옷 하나 하나의 특징을 기억하고, 입을 사람들을 생각하고, 더워도 참고 귀찮아도 참으면서 옷들을 다려주셨겠지.

나는 정말 게으른 스타일이라, 중고등학교 때에도, 춘추복/동복을 입을 때가 되면 남의 눈에 드러나는 옷깃과 목 언저리 부분하고 팔, 소매 부분만 대충 대충 다려서 입고 다니곤 했었기에 어머니가 질색팔색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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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어무이께서는 언제부턴가 다림질을 하지 않으신다. 다림판도 옷장 저 구석에 처박혀 있는 아이를 겨우 끄집어냈다.

또 생각해보면 이제 더 이상 텔레비전 드라마 속에서도 엄마들이 다림질을 하는 모습은 못 본 지 오래인 것 같다.

신혼살림을 준비하면서 다리미를 사네마네 고민을 했던 지인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아마도 필요 없을 거라고 섣불리 조언했던 것 같기도 하다.

다림질을 마치고 다시 옷장에 다리미를 쑤셔넣으면서, 내가 이 아이를 다시 꺼내게 될 날이 언제일지 생각해 본다.

사실 매우 대충이었지만, 그래도 다리미를 들고 조용히 옷을 살펴보며 공을 들이던 이 짧은 시간이, 근래 내 인생에서 가장 정적이면서도 투자 대비 효용이 뛰어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조차 든다.

지금의 우리는 매우 많은 것들을 남의 손에 맡기고, 돈을 지불하고, 시간과 편의를 산다. 대신 그만큼의 남을/나를 생각하는 시간, 머리를 쓰는 시간, 조용히 보내는 시간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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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날이 어두컴컴해지고, 비를 동반한 강풍이 부는 꼴새를 보아하니, 오늘 다린 블라우스를 입고 외출하는 건 무리일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