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가고 - 고레에다 히로가즈

2016. 9. 22. 22:53my mbc/ciné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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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지 오전에 시간이 남았던 언젠가의 주말, 어무이 모시고 효녀 코스프레하면서 보고 온 영화.


어무이가 [카모메 식당] 재밌게 보셔서, 왠지 이번 영화도 좋아하실 것 같았는데 사실 분위기는 그 놈이 그 놈 같아도 감독이 전혀 다름-_- 나는 [앙: 단팥 인생 이야기]를 티비에서 완전 재밌게 봤는데, 배우만 똑같고 이 영화도 감독이 전혀 노 상관 ㅋㅋㅋ


여튼 그렇게 고르게 된, [태풍이 지나가고]는 본 지는 오래 됐는데 후기를 쓸라니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매우 재밌었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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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앙의 키키 키린 할머니와 카모메 식당의 고바야시 사토미 아줌마가 나오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남편과 사별한 어머니와 출가한 딸내미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연출하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모습들이 웃음을 절로 자아내는 영화의 도입부. 


특히 어머니가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도 계속 뭐라고 뭐라고 떠들고 있는 딸의 모습은 정말 생활 그 자체였다. 


그리고 영화 초장부터 두 모녀 캐릭터와 앞으로 나올 아들놈 캐릭터 확실하게 각인시켜주는 역할을 했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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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키키 키린 할머니는 [앙: 단팥 인생 이야기] 에서도 엄청 인상적이었는데, 여기서도 연기 너무 자연스럽게 잘 하시고, [바닷마을 다이어리] 에서도 아주 잠깐 출연하지만 매우 오래도록 기억되는 연기를 하신다.


뭔가 일본 디마프에 딱 나와야 될 것 같은 스타일. 매력적이심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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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 모녀가 언급했던 철 없이 키만 멀대 같이 큰 속 썩이는 아들놈 등장. 


기무라 타쿠야 나오는 일본 드라마 한참 챙겨보던 시절, 보는 드라마마다 나왔던 아베 히로시가 연기하여 아주 맛깔나게 그려놓은 캐릭터. 진짜 한심한데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로 등장하심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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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책 내고 상 받은 작가이셔서 글쓰기에 대한 꿈과 로망이 아직 남아있는데, 생활은 궁핍하고 경제력이 안 받쳐주니 부인이랑 아들과 함께 살지도 못 하고, 흥신소에서 일하고 복권 사고 경륜인지 경마인지 보러다니는, 전형적인 지금을 사는 스타일.


이 아들내미가 어머니 집에 찾아가서 무슨 열세살 아들내미처럼 구는 장면들도 보고 있으면 참 익숙하고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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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어머니가 떠나는 아들내미 바래다 준다고 아파트 동네를 걸어가는 장면, 그 와중에 어머니가 아마도 흠모할지도 모르는 것으로 보이는 동네 유식한 할아버지랑 마주친 장면은 히트다 히트. 


언뜻보면 이미 바닥까지 드러나 아무 감출 것이 없는 사이 같아도, 사실은 잘 보이고 싶고, 뭐라도 더 해주고 싶고, 감싸주고 싶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싶은 게 엄마와 자식 사이라는 듯이, 풀어내는 대사들이 하나하나 귀엽게 와닿는 그런 느낌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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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보면, 마치 다 큰 자식들 둔 어머니를 중심으로 한 가족 이야기를 할 것만 같은 영화지만 사실은 이 아들놈이 꾸...리다가 실패했으나 꾸역꾸역 붙잡고 가는 가족 이야기와 엉켜 있었음.


대개 철 없는 아빠 또는 엄마의 자식 캐릭터가 그러하듯, 어딘가 시니컬 한 듯 어른스러운 아들 싱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 본연의 천연함과 순진함이 가득해 더욱 귀엽고, 


금보라와 구혜선을 섞어둔 듯한 외모의 마키 요코가 분한 부인 쿄코는 이성적이면서도 냉정하게 행동하려고 하지만 그렇다고 매정하지는 않은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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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래는 떨어져 있어야 하는 요상한 가족이 태풍 오는 여름날 밤, 한 자리에 모여 있게 된 그 날 그 시간이 영화의 클라이막스인데, 아 이 즈음에서 모든 캐릭터들이 주고받는 대사 하나하나가 소중한데, 너무 오래되서 기억이 잘 안 난다-_- 


뗄래야 뗄 수 없는 가족 간의 정 같은 것도 느껴지고, 있을 때 잘 하라는 건가 싶기도 하고, 어른아이 구분 없이 결국 누구든지 계속해서 조금씩 자라고 있는 중- 같은 느낌도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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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흥신소 후배가 내뱉듯 던지는 자기 얘기나, 흥신소 고객이었던 센 언니가 보여준 태도 같은 것들, 마치 소품집 열어보듯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였는데.


보여지는 장소들도, 장면들도, 잔잔하게 반짝반짝 하는 느낌이라 이쁘고.



근데 사실 정확하게 아! 그러니까 이런 얘기! 의 느낌을 받지는 못 함. 아 이래서 영화 포스팅은 바로바로 해야하나 보다.




여튼 여러분, 보세요. 잔잔하고 귀여운 와중에 큰 웃음 터져가며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급 마무리 부끄럽다.)


끗.





AUG 2016

@씨네큐브



※ 사진출처 - 네이버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