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 같은 감수성이

2010. 12. 20. 12:15journal

남아있다고 생각했다.

하얀 눈이 온 동네를 뒤엎고 있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을 때,
너도나도 바쁜 출근길에 혼자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고 있었을 때,
아- 이럴 때 눈사람 하나 만들어줘야 하는데 라고 생각했을 때.

하지만 곧,

몰아치는 눈발을 이기지 못 해 우산을 펴 들었고,
회사 앞에서 혼자 눈사람 만들고 있으면 일 없는 애처럼 보일까 걱정했고,
출퇴근길에 북적댈 사람들과 제 시간에 오지 않을 rer을 생각하니 짜증이 났다.


이렇게 예쁘게 눈이 오는데 왜 우산을 굳이 꺼내어 드냐고,
남들의 늙어버린 감수성을 탓하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대체 무엇때문에 이렇게 마음이 팍팍해졌나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어른은 나이를 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닌데.

초중고 지나 대학 진학까지 정해진대로 걸어오던 거침없던 인생살이를 벗어나,
내 선택대로 살아가야 하는 길 위에서 직장생활 그거 쪼끔 했다고 쩔어버렸다.



2년의 사회생활 뒤에 툭툭 손 털고 자발적으로 떠나 온 후랑스라,
빡빡시런 일 하나 없이 매일매일이 오블라디오블라다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디에도 자리잡지 않은 일하는 백수는,

이 곳에 남아 있는 모습도,
한국으로 돌아간 모습도,

그 어느 쪽으로도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채 하루하루를 보낸다.


어린아이의 감수성을 불러일으키는 빠리의 예쁜 배경이 주는 위안도,
결국 눈 녹듯 그새 사라져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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