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
2011. 2. 8. 00:25ㆍjournal
감정이 폭발했다.
타향살이의 설움이 폭발했다.
일하는 백수의 지쳐가는 심신이 폭발했다.
그리고 장난꾸러기 쏘쿨녀의 자아가 폭발했다.
물론,
나의 상황이, 나의 심경이 변화하여,
나의 태도 및 정신상태가 달라진 것을,
넘들이 알아서 눈치채주길 바랬던 것은 나의 문제일 것이나.
오가는 수많은 대화 속에서 그렇게 많은 힌트를 주었건만,
그를 알아채주지 못 하는 주변인들에게 섭섭함을 느끼는 것은,
꼭 나의 탓만은 아니다.
게다가 너는 원래 뭔 장난도 다 받아주던 쏘쿨녀잖아- 갑자기 왜 이러심? 이라 하시면,
대체 나는 그럼 언제까지 이 엄청난 감정소모를 견뎌내가며 허허실실 살아야된단 말인가- 하는 생각에,
폭발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냔 말이다.
1.
이건 나도 어쩔 수 없어- 라며 너무 쉽게 금방 포기해버린 것은 아닐까- 엄청난 고민을 했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타개하고 좀 더 발전적인 길을 걸을 수 있나- 생각 안 했던 게 아니다.
그러나 정말 백방으로 뒤져봐도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아,
다른 것에서 다른 만족을 취하며 이 곳에서의 생활을 십분 써먹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그렇게 잘 살았다.
2.
이렇게 말을 하고 저렇게 말을 해도 항상 어딘가 틀려먹는 부분이 있는 이 망할놈의 불어나부랭이 때문에,
하루종일 밖에 있다 들어온 날은 레슬리한테 말 걸지 말아달라고 부탁할 만큼 머리가 지쳤다.
불문과 굶는과라고 백만명이 말려도, 곧죽어도 그 불어나부랭이가 좋아서,
여기 온 지 10개월 만에 중학교 때부터 붙들어온 영어를 새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그렇게 붙들고 늘어졌는데도 여전히 어딘가 안 굴러가는 부분이 남아있는 이 불어나부랭이 때문에,
심신이 지치고, 머리가 지쳤지만.
여기서 사는 게 내가 배운 걸 활용해먹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굳게 믿으며,
그렇게 잘 살았다.
3.
그렇게 어떻게든 잘 살고 있었으니까,
어딘가 좀 막히는 데가 생겨도, 그냥 웃음거리로 치부하며, 허허실실 그렇게 살았다.
이런 장벽들 쯤이야 희화화시켜 웃어넘겨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살았다.
그건 일종의, 나만이 가질 수 있는 권리 같은 것이었다.
뚱뚱한 사람한테 뚱뚱하다고 놀리면 뚱뚱한 사람은 웃기지 않지만,
뚱뚱한 사람이 스스로 뚱뚱하다고 놀리면 그냥 다 웃을 수 있잖아.
그건 나에게 있어 정말 유일무이한 탈출구 같은 도구였는데.
내가 나를 위해 웃자고 쓰는 소재를 너네가 가져다 남용하지 말란 말이다.
4.
물론 많은 사람들이 내게 말해줬고,
나도 이미 잘 알고 있듯이,
그 남용에 악의란 전혀 없다.
하지만 이제 장난이 장난이 아닌 그 선을 넘어버리는 순간을 참아낼 여력 따위,
나에겐 존재하지 않는단 말이다.
당신들이 그렇게 나를 놀려먹을 정도의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어디까지가 적정선인지 알 수 있는 능력 또한 갖추었을 것이라고,
그렇게 너무 쉽게 믿어버린,
역시 그렇게 또 내 탓이 된다.
5.
물론,
이렇게 악에 받쳐 주저리주저리 대면서도,
하필이면 지금 걸려가지고 나한테 욕지거리를 듣는 너네들은 뭔 잘못인가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이런 종류의 폭발하는 감정을 마주한 것이,
정말 내 일생에 단 한 번도 경험할 수 없는 일이었더래서,
내가 지금 화를 낼 대상을 제대로 잡은건지 아닌건지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내 주위의 그 어떤 누구가 문제였던 게 아니라,
그냥 이 모든 것을 싸잡아서 지금 나, 여기 후랑스라는 이 상황 자체가,
시한폭탄 같은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6.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한국에서 다시 시작하게 될 나의 인생이 느므느므 빡세고 힘들어서,
뭔가 또 다른 곳으로 눈이 돌아가는 그 날이 와도,
지금 이 날들을 다시금 떠올리면,
들썩이던 궁디짝이 얌전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
이렇게 나는 한국에서 살 사람- 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하는 것도,
앞으로 남은 몇십년 평생을 위해서는 꽤 유용한 경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론은,
나 이제 집에 간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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