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자 선언 - 문유석

2019. 8. 14. 12:46my mbc/bouquin

p.30
나는 감히 우리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가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라고 생각한다.

p.69
결국 우리가 더 불행한 이유인 수직적 가치관을 버리고 수평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다양성의 존중, 아니 그걸 넘어서 다양성을 숭상하는 것이 사회 다수 구성원의 행복을 위한 첩경이다. 

p.76
세상을 아군과 적군, 정의와 불의로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는 이들은 천사도 악마도 아닌 인간의 현실적인 모습을 이해하지 못 하고 자신의 일방적인 기대심리를 투영하여 과잉 열광하거나 조금이라도 자기 기대와 다른 모습을 보면 배신자 취급을 하며 돌을 던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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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책읽아웃에서 문유석 판사 편을 듣고 이 책을 바로 구매했다. 드라마를 보진 않았지만 '미스 함무라비'를 쓰신 분으로도 유명해서 알고는 있었는데, 책읽아웃 인터뷰에서 말씀하시는 톤앤매너나 내용들이 마음에 들었다.

언제부턴가 가져온 느낌적인 느낌(=편견)으로 왠지 권위적이기만 하고, 나 같은 소시민 말은 안 들어줄 것 같은 판사 이미지가 아니라는 점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분에게서 매력을 느끼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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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판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불행할까'라는 고민을 출발점 삼아, 본인을 '개인주의자'라고 밝히며 본인 삶에서 겪었던 에피소드들을 엮어내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설명한다. 

무엇을 설명하냐고? 합리적 개인들이 자신의 이익은 취하고, 타인은 배려함으로써 만들어 갈 수 있는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에 대해서다. 

물론 문유석 판사 개인의 성향이나 가치관이 많은 영향을 끼쳤겠으나, 판사라는 직업 상 보고 듣고 경험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무수한 단면들을 분석하는 눈빛은 날카롭다. 그 안에서 이 분의 유머러스하고 온정적이기도 한 감정이 묻어날 때야말로 무릎을 탁 치게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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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실, 이 책을 읽고 난 감상이 그렇게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문득 문득 '사회 경제적 지위가 높고 고학력이지만 겸손한 언행을 겸비하여 멋진 나'의 발화를 읽는 것처럼 묘하게 불편한 지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책읽아웃 측면돌파에서 미깡 작가 인터뷰를 듣다가, '육아를 포함한 집안 일에 서툰 남편을 다그치지 말고 그가 스스로 해낼 때 까지 내버려 두는' 것이 그녀의 노하우라는 부분에서 멈칫했는데, 이는 어찌됐든 '스스로 해낼 때 까지 뭐가 됐든 해보려는 남편'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배부른 조언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스스로 해보려는 의지가 없는 남편이랑 사는 사람들에게는 도움되지 않는 조언이다. 

적고 보니 적절한 비유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찌됐든 상대적으로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아무리 스스로 겸손하려 하고, 타인을 배려하려 하고, 평등과 존중을 외치려 해도 도달할 수 없는 어떤 지점? 공감할 수 없는 어떤 지점? 같은 것이 존재하는구나- 싶은 마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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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정 달인의 비결', '서른아홉 살 인턴', '머니볼로 구성한 어벤저스 군단'으로 이어지는 에피소드 등은 매우 강하게 뇌리에 남아 있다. 

비밀의 숲, 로 앤 오더 (?ㅋㅋㅋ) 앨리 맥빌 (??ㅋㅋㅋ) 같은 법정 드라마들이 주는 감동 포인트는 결국 '사람 이야기' 라고 생각하는데, 문유석 판사의 글에서도 동일한 감동 포인트가 느껴졌고, 이 부분은 확실히 ㅇ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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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쓰고보니,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에서 이어지는 나의 요즘 인생 화두는 같이 사는 사회.. 뭐 이런 건가 싶다.

 

2019.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