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을 권리 - 데이비드 프레인

2019. 4. 7. 19:17my mbc/bouquin

p.13 
고된 노동을 옹호하는 윤리가 다시금 입지를 다지고, 고용 가능성은 우리 야망을 자극하고 관계를 조정하며 교육 체계를 바꾸게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고용 가능성이나 경제적 필요와 상관없이 어떤 행동이 가치 있고 의미 있는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부작용을 겪는다.

p.53
모든 사람이 고된 노동에 들이는 시간을 줄이고 스스로 선택한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쓰도록 해 결국에는 경제적 영역을 실제 필요에 종속시키는 정치적 개입이 힘을 얻기 바랐다. 고르는 이런 개입 없이는 더 심각한 파국을 맞을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되면 자유시간은 점점 더 희귀해져 특권층만의 자원이 될 것이다.

충분한 임금을 지급하는 일자리를 나누기 어려운 상황이 와도 일을 중심에 둔 사회 진보 이상을 계속 장려할 테고, 삶은 일자리를 찾고 지키려는 투쟁으로 점철될 것이다.

p.90
오늘날 전형적으로 바쁜 노동자가 이런 상황의 가장 극단적인 피해자다. 아직 어두울 때에 집에서 나와 답변할 이메일이 쌓여 있는 상태로 출근을 하며, 가족과 감정적 교류를 하기엔 너무 지친 상태로 집에 돌아와 자기 전에 와인을 마시고 텔레비전을 보는 것 외에는 내키는 게 없는 사람들이다.

와인을 마시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저급'한 활동이라는 게 아니라, 노동자가 다른 선택을 할 시간과 기운을 고갈시키는 상황이 문제라는 말이다.

p.124 
이 새로운 틀 짓기를 통해, 사회가 대결할 주적은 구조적 불평등이라는 병리현상이나 일자리 부족, 고내찮은 일자리 고갈 등이 아니라 이른 바 게으름, 특권의식, 의존적 문화 속에 내재하는 개인의 병리현상이 된다.

p.212
참여자들은 자유시간 대부분을 일하기 위한 준비나 재충전 과정에 다 써버리고 있었다는 사실, 그렇게 해서 자유시간이 사실은 어떤 면에서는 자기가 아닌 고용주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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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함께하는 시민행동'에서 일하는 지인이 지나가다 소개한 책을 기억해 두었던 것이 계기가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 때 나는 삼십몇세에 늦깍이 백수이자 실직자, 반은 해고 노동자의 마음으로 살다가 겨우 겨우 찾은 직장에서 말도 안 되는 상사 때문에 적응하느라 엄청 고생을 하고 있었던 즈음이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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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장부터 지금의 직장까지 총 n번의 이직. 어딘가에는 내가 상상하고 기대하는 이상적인 모습의 조직이 있을 거라고 믿고 움직여 여기까지 왔지만 그런 곳은 없었다.

어떤 회사로 이직했을 때에는 말도 안 되는 업무 환경과 업무 강도 때문에 너무 힘들었지만, 그것은 이 회사로의 이직을 결정한 나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바람에 우울증을 겪었다.

지금의 신랑과 결혼을 준비하기 시작했을 때는 실직 상태였는데, 그것이 나의 흠이 될까봐 조금은 조바심나는 마음으로 구직 활동을 재개 했던 것도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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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더 나은 곳을 찾아 떠나는데 에너지를 쓰는 대신, 회사는 월급을 주는 곳이고 구성원은 받은 만큼 일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정설을 따라 각종 반이상적인 모습들을 '사회생활'이라는 범주에 넣어 덮어버리는데 쓰게 됐다. 

이상적인 직장에서 내 영혼을 모두 담아 일하려던 마음을 접었더니, 더 이상 내 뼈와 시간을 갈아 넣지 않아도 되고, 나름 편안한 회사 분위기와 그 동안 쌓인 나의 짬바 덕분에 책임감 있게 quality 와 schedule을 챙기는 정도는 되었다.

그 대신, 퇴근하고 돌아와 저녁만 대충 챙겨먹어도 밤이 되어버리고, 일요일엔 월요일을 생각하며 몸을 사리고, 그렇게 출퇴근을 위주로 반복되는 시간은 다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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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에게도, 사회에게도 큰 의미나 가치가 없는 사기업 구성원으로서의 직장 생활을 계속하느니, 적게 일하고 적게 벌더라도 차라리 나의 개인 시간을 더 많이 쓸 수 있는 직업을 구하는 게 낫지 않을까 고민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동안 유지해 오던 지출 규모를 자발적으로 줄여야 하는 결정은 쉽지 않았고, 사회적인 기준에서도 크게 벗어나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렇다면 일을 구하지 않은 채로 새로운 분야로 가는 길을 찾을 때까지 버텨보는 건 어떨까. 그러기에 왠지 나는 게으르고 무식하고 대책 없어 보였다.

그래서 이렇게 돈도 시간도 크게 벌지 못한 채, 어떤 새로운 일에 도전하지도 않는 채로 잘 쉬기 위해 일을 해야 하면 쉬어야 하니까, 그렇게 일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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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우리는 이렇게까지 일을 계속할 수 밖에 없나. 왜 실직 상태의 나는 그렇게 기가 죽어 있었던가. 어째서 돈을 벌지 않으면, 출퇴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가.

한 동안, 꽤 오래 유럽 소설만을 읽어왔던 편향 된 독서 취향을 갖고 있었던 내가 데이비드 프레인의 책 '일하지 않을 권리'를 감명 깊게 읽은 건, 위에 열거한 나의 경험들 때문일 수 있겠다.

이렇게 설명할 수 있구나-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이렇게 이해할 수 있겠구나- 싶었던 부분이 너무 많아 계속 적어 넣다보면 책 한 권 그대로 다시 써야할 지경이다.

언젠가 다시 꺼내 읽어도 늘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그런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