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13. 12:51ㆍmy mbc/bouquin
p.251
평생을 약속하며 결혼이라는 단단한 구속으로 서로를 묶는 결정을 내리는 건 물론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더라도 한 사람의 생애 주기에서 어떤 시절에 서로를 보살피며 의지가 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충분히 따뜻한 일 아닌가. 개인이 서로에게 기꺼이 그런 복지가 되려 한다면, 법과 제도가 거들어주어야 마땅하다. 이전과는 다른 모습의 다채로운 가족들이 더 튼튼하고 건강해질 때, 그 집합체인 사회에도 행복의 총합이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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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트위터에서 영업을 당한 책이었겠지. 김하나 님의 트위터는 이미 팔로 중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책을 읽고 나니 김하나 님이 너무 좋아져서 이 분이 진행하는 yes24 팟캐스트 책읽아웃도 조금씩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지금 이 글을 쓰려고 보니, 2015년에 김하나 님이 낸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 책을 읽고 매우 실망하여 리뷰를 남겨놨던 기억이 난다-_- 사람 마음은 이토록 간사한 것인가, 다시 그 책을 읽어보면 내 마음은 또 얼마나 다를 것인가. 신기하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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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우연한 기회에 서로를 알게 된 두 성인 여자가 그 동안 각자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며 살다가,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합가(!) 하게 된 이야기이며, 두 사람이 번갈아가며 그 과정을 회고하는 형태로 기록되어 있다.
몇십년을 따로 살아 온 두 분은 어떤 면에서 매우 잘 통하기 때문에 동거를 결정했는데, 사실 성격, 생활방식, 많은 것들이 너무 달랐기 때문에 쉽지 많은 않았지만, 이내 남부럽지 않은 완벽한 스트럭쳐를 만들어가게 되었다- 대략 이런 얼개.
책은 정말 금방 쉽게 읽히고, 그 와중에 두 사람의 표현력이 대단하고(한 분은 카피라이터, 한 분은 잡지 에디터!), 어떤 상황이나 주제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자 함이 드러나 재미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성인 경제활동 여성으로써 롤모델 삼고픈 모습이 보이는 것도 같았지만, 난 안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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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 커플들이 결혼해서 겪는 에피소드(=나의 에피소드)들과 유사하면서도 때로는 더 스펙터클하고, 조정과 화해와 이해에서 오는 감동이 있어, 부럽다는 생각이 든 적이 적지 않았다.
결국 동거인이 같은 성(性)의 사람이어야 가능한 것들이 아니었고, 원래 같이 산다는 것은, 이런 종류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었겠지. 신랑한테 너무 읽으라고 보여주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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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위에 따온 문단은 황하나 님이 쓴 이 책의 가장 마지막 문단인데, 결국은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종합한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 두 남녀의 결합(=결혼)은, 토끼 같은 자식들이 복작대는 가정에서 현재의 수입만으로 흔들리지 않는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안정을 보장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가능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예전의 가치 그대로, 비정상적으로, 연애 상태를 강요하고, 특정 나이에 가야할 (이성애자로서의) 길을 가르치는 분위기다.
비록 그 '대세'를 거스르지 못 하고 결혼해 버린 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개인들의 삶은 달라지고 있고, 이제는 사회가 달라져야 할 때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전달하는 이 두 분께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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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면, 고양이들 4마리 합사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이루어 냈는지인데, 그녀들의 육묘일기도 책으로 읽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네.
2019.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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