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13. 11:07ㆍmy mbc/bouquin
p.246 - 작가의 말 중에서
그저 선택에 관한 이야기다. 틀릴 확률이 어쩌면 더 많은, 때로는 어이없는 주사위 놀음에 지배받기도 하는. 그래도 그 결과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상처가 나면 난 대로, 돌아갈 곳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사이가 틀어지면 틀어진대로. 그렇게 흘러가는 삶을, 단지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이 실은 더 많을 터다. 그러다 보니 귀향이나 회복, 치유와 화해를 넘어 미래에의 전망에 이르는 성장의 문법을 무의식적으로 배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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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작가의 2019년작 버드 스트라이크에 대한 소문을 들으며 작가의 이름을 익혔던 터였다. 트위터에 돌아다니는 '위저드 베이커리'의 제빵사 주인공 이미지 연성 이런거 (나의 마법사는 저렇지 않아! 뭐 이런 절규)에도 몇 번 노출됐고, 차별 없는 등단 기회를 얻기 위하여 필명을 일부러 남자처럼 썼다는 작가 인터뷰도 들었다.
그리고 리디북스에서 위저드 베이커리를 구매했다. 한참 인기몰이를 하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뒤늦게 읽고 혼자 감동을 받고 있던 터라, 뭔가 비슷한 느낌을 풍기는 제목과 표지 일러스트를 보고 선택한 것도 있고 ㅎㅎ 10년 동안 12편을 내놓는 다작 작가의 맨 첫 작품부터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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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진짜 나미야 잡화점 뺨 치게, 묵직하게 마음을 건드리고 은은하게 감동을 주는 글이었다. 청소년 소설의 범위를 성인에게까지 확장했다는 평을 받던데, 이 쯤 되면 청소년 소설이란 무엇인가 역으로 고민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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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는 진술 번복으로 인해 삶의 너무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했던 성폭행 피해자와 그 범죄자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형사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던 넷플릭스 명작 시리즈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생각났는데,
뭔가 이 시리즈와 책은 별로 비슷하지 않지만, 독자로써 주인공의 답답한 상황을 보고 겪으며 응원하게 되는 마음이 비슷했다. 직간접적으로 주인공의 편이 되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에 안도하게 되는 마음도 비슷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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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에서 파는 별별 것들의 에피소드도 흥미롭지만, 피크는 땅콩버터 맛 대보름빵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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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처음 한 두편 까지는 폭 빠져 읽었지만, 이내 고정 된 스타일에 배경과 주인공 이름만 바꿔 넣는 방식에 질려 버린 기욤 뮈소나, 스노우맨에서 레드브레스트로 넘어왔는데 내가 지금 넘어온 게 맞는지 긴가민가 한 요 네스뵈 등을 겪으면서, 한 작가의 작품을 파고드는 일을 지양하고 있긴 했는데,
구병모 작가(와 정세랑 작가)에게는 또 다시 실망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믿음과 기대로 다음 작품들을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
2020.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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