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13. 11:20ㆍvoyages en étranger/asie du sud ouest
방콕 초행자에게 가장 어려운 여행 준비 과정은 바로 호텔을 고르는 일이었다.
#. 고민 포인트
첫째로는, 10~20만 원대 저렴한 가격에도 4~5성급 호텔이 널려 있기 때문에 과연 어디까지 가성비를 따지고, 어디까지 좋은 호텔 급을 따질지 가늠이 잘 안 됨. 그 와중에 또 28~35만 원대로 넘어가면 너무 비싼 것 같다가도, 다른 나라에선 이 가격에 이 정도 호텔을 못 갈 거라고 생각하면 안 비싼 것도 같고. 물론 1박에 50~70만 원을 놓고 고민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ㅎㅎ
둘째로는, 짜오프라야 강의 화려한 야경과 함께 호텔에서 제공하는 수상보트 서비스까지 이용할 수 있는 리버사이드 호텔들 중에서 고를지, 강변은 포기하더라도 BTS 역에 가깝고 좌우 상하로 움직이기 좋은 중간 지역 호텔들 중에서 고를지, 모든 걸 포기하고 무조건 신생 호텔을 고를지 결심하는 게 어려웠음. 지금은 한 번 댕겨왔으니까,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고를 수가 있겠지만, 한 번도 안 가본 입장에서는 내가 이 지역을 선택하면 저 지역은 어떻게 되나 하는 끝없는 갈등의 연속이었음.
마지막으로는, 수영장이 좋아보이는 곳을 고르는 게 어려웠음. 리뷰 백만 개를 찾아봐도 어디는 그늘이 진다, 어디는 벌레가 많다, 어디는 너무 좁다 등등 단점이 없는 곳이 없었음 (당연한 얘긴가?) 사실 결과적으로는 총 4박 하면서 수영장 두 번밖에 안 간 주제에 수영장이 뭐 그리 중했을까 싶지만, 그래도 기분이 ㅎㅎㅎ 또 그게 아니자네.
#. 후보
고민고민하며 추린 첫번째 후보는 아난타라 시암 호텔.
나보다 한두달 먼저 방콕을 다녀온 언니네 가족이 시암역과 칫롬 사이 인터컨에 머물렀는데 위치가 좋았다고 해서, 구글맵으로 그 인근 호텔들을 찾아보다 보니 ‘아난타라 시암 호텔’이 눈에 띄었다. 가격은 20만 원대 초반이라 합리적이고, 원래 포시즌스였는데 바뀌었다나 뭐라나, 오바마가 머물렀다나 뭐라나.
한국인들 커뮤니티에서는 같은 계열사의 아난타라 리버사이드가 엄청 호평을 받는 분위기였고, 지인 한 명도 최근에 다녀왔는데 강추를 한 지라, 저명하신 아난타라 패밀리니까 평타 이상은 치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다른 호텔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짜오프라야 좌하단에 위치한 아난타라 리버사이드는, 우리 여행이 무늬만 호캉스고 결국 로컬맛집 찾아 걸어 다니는 컨셉이 될 거란걸 알기에 포기했음)
무엇보다 조식 먹는 식당에서부터 위로 뻥 뚫린 중정 타입의 건물 형태와 발코니마다 늘어진 식물들, 정원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음. 로비에서부터 눈을 휘어잡는 커다란 태국식 벽화(?)도 멋있고. 3m 깊이까지 들어갈 수 있는 수영장도 너무 도심 속 호텔 같지 않고, 적당히 리조트 분위기 나면서 좋아보였음.
그런데 진짜 네이버며 어디며 아무데도 다녀온 리뷰가 없는 게 아닌가! 보통 태사랑 같은 네이버 까페나 블로그 몇 개만 뒤져보면 호텔을 아주 뼛속까지 들여다보는 게 가능하거늘, 아난타라 시암 호텔은 놀랍도록 정보가 없었다. 그나마 몇 개 찾은 게, 에어컨이 심하게 안 나와서 방이 너무 습하고 더웠다, 수영장이랑 조식 식당에 모기가 너무 많았다 이런 거?
진짜 집요하게 계속 찾아보니까, 한국 사람이 아주 안 찾는 것 같진 않은데, 아마도 2016-18년 정도에 엄청 유행하다가 (이 때는 까페에도 리뷰 게시글이 좀 있음) 코로나 이후에 다른 신생 호텔들에 밀린 것 같기도 하고…
#. 다른 후보
그래서 불안한 마음으로 저장 리스트 저 끝에 넣어두고,
상그릴라 호텔 - 한국인들의 후회없는 선택, 강변에 위치, 수상보트 운영, 수영장 좋음, BTS역 가까움, 로컬 맛집 가까움, 가격대 적합.
쉐라톤 오키드 호텔 - 역시 한국인들의 후회 없는 선택, 상그릴라보다 교통은 안 좋음, 수영장 2개, 강변에 위치, 수상보트 운영, 가격대 적합.
인터컨티넨탈 호텔 - 가족 추천, 수영장이 작지만 꼭대기 층에 있음, 교통 최고지만 강변은 아님, 가격은 살짝 비싼 편.
그 외에도 진짜 무수한 후보들을 끊임없이 들여다보는 날들을 보내다가, 정말 마지막에 상그릴라 & 아난타라 시암 두 개를 놓고 고민하던 순간, 시간을 너무 오래 끌어서, 상그릴라 호텔 가격이 30만 원 가까이로 올라가는 광경을 목격해 버렸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ㅋㅋㅋㅋ 선택한 아난타라 시암 호텔. 결론은 대만족(에서 마이너스 10점 정도?).
지금부터 만족스러운 아난타라 시암 호텔 방콕 리뷰를 풀어보겠다.
#. 룸 컨디션
아난타라 공홈에서 조식 포함 1박 21만원 정도 금액으로 기본 디럭스룸을 선택했다. 처음 딱 방에 들어가자마자 너무 넓고 깨끗하고 좋다고 느꼈음.
에어컨도 걱정한게 무색할 정도로 매우 빵빵했다. 냉방병 걸릴 정도. 너무 추워서 온도를 낮춰놨더니 습해지는 게 확실히 느껴지긴 했는데 그건 뭐 호텔 탓은 아니지. 복도 쪽에 가까운 화장실에 앉아있다 보면 그닥 방음이 잘 되는 것 같진 않았는데, 지내면서 불편함이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다. 카펫 바닥을 싫어하지만 않는다면, 딱히 더럽거나, 먼지 많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없었고, 청소가 덜 되어 있거나 한 부분도 없었음.
한 가지 문제라면 침대였는데, 너무 푹신하고 깨끗하고 다 좋은데, 매트리스가 너무 흔들렸다. 옆사람이 조금만 움직여도 내 몸이 같이 흔들릴 지경이라 쫌 불편했음. 근데 이건 트윈룸 잡았거나, 남편이 없었다면 해결될 문제라서 그냥 넘겼다. 어차피 혼절해서 잠들면 아무것도 모르고, 잠들기 직전이나 일어난 직후에나 조금 불편하다고 느낄 뿐.
아 굳이 또 한 가지 문제라면 조명. 옛날 호텔이라 그런지 통합 제어 리모콘이 없었다 ㅎㅎㅎㅎ 방 안의 조명은 침대 양쪽에 있는 왕 스탠드하고, 독서등, 방구석에 서 있는 스탠드, 책상 위에 있는 스탠드까지 합쳐서 6개고, 옷장-미니바-화장실 지나 문으로 나가는 공간의 조명은 따로 있었는데, 모두 각각 하나씩 껐다 켰다 해야 하는 100% 아날로그 구조였음. 처음에 방 불을 못 꺼서 좀 헤맸다. 근데 그게 또 뭐 그렇게 불편했냐 하면 아니지롱. 아무 상관없이 잘만 지냈다.
화장실도 매우 넓고 깨끗했다.
어메니티는 아마도 호텔 스파에서 쓰는 브랜드 제품으로 채워넣는 것 같았음. 하도 방콕 물 더럽다고 해서 욕조는 안 썼지만, 그렇다고 샤워기 필터를 가져가지는 않았는데, 남편도 나도 오히려 여기서 씻으니까 피부 좋아진 것 같다고 좋아했음. 물이랑 상관없이 그냥 일 안 하고 놀고먹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 한 가지, 샤워부스에 물빠짐이 좀 느려서 불편했는데 호텔에 얘기할까 하다가 그것도 관뒀다 ㅋㅋㅋㅋㅋ 나 알고 보니 그냥 주어진 환경에 쉽게 만족하는 편인 듯? 남편은 아마 물이 빠지는지 차는지도 몰랐을 듯.
#. 조식 레스토랑
조식 레스토랑은 1층에 있는 바와 레스토랑 공간을 다 활용해서 제공한다.
건물이 가운데 뻥 뚫린 네모 형태로 둘러서 있어서 중앙에는 자연광이 들어오는 중정이 있고, 한쪽은 바와 레스토랑, 다른 한쪽은 가게들이 있는 식인데, 풀도 많고 햇살도 좋아서 갈 때마다 느낌이 너무 좋았다. 조용하고 여유 있는, 한가로운 아침 시간을 만끽하는 호캉스의 정수랄까.
부페는 정갈하고 소박하게 마련되어 있는데, 샐러드와 과일, 태국 또는 인도식 카레, 소시지, 햄과 치즈, 딤섬, 각종 구운 야채 등등 건강한 느낌. 바로 만들어주는 국수 코너랑 에그 코너 따로 있었다. 그리고 빵이랑 패스츄리 코너에 가면 잼이 한 130개 정도 늘어선 느낌으로 열몇 개 정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어서 좋았음.
따로 주문할 수 있는 스페셜 메뉴에서 매일 하나씩 시켰는데, 둘이 하나 먹어도 너무 배부르다. 하지만 커피는 그냥 평범한 부페 커피 맛이라서 아침마다 카페인이 좀 부족했음. 그러고 보니 방콕에서 정말 맛있는 커피를 못 마셔본 듯…ㅠ
#. 수영장
2층에 수영장이 위치하고 있다. 수영장은 그냥 다 너무 좋았음.
근데 10월이라 그런가 물이 좀 차긴 했어 ㅎㅎ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수영장을 쓰는 사람이 거의 없었음. 보통 나이 많은 서양 어르신들이 매일 나오셔서 선베드에 누워서 책 읽다 자다가 몸 익으면 갑자기 풍덩 들어갔다 나오는 정도. 하루는 다른 젊은 커플이 잠깐 있다 먼저 들어갔고, 다른 하루는 아시안 가족이 애들 햄버거 시켜주면서 수영 열심히 했다.
아무래도 빌딩 숲 사이에 있으니 그늘진 곳은 좀 추워서 해 비치는 데서만 놀았다. 잠깐만 나와있어도 금방 햇살에 바삭바삭 구워지니 방콕의 날씨는 참 신기하기도 하지. 시내에 나가면 그렇게 습하고 숨 막히는데, 왜 호텔 수영장에서는 그렇게 따뜻하고 건조했을까 ㅎㅎㅎ
또 굳이 단점을 하나 꼽자면, 호텔 뒤 편에 엄청 높게 새로 짓고 있는 공사중인 건물이 있어서 공사장 소음이 좀 들렸다. 괴로울 정도는 아닌데 ㅋㅋㅋ 두 번째 가보니까 전날 나와있었던 어르신 커플이 헤드폰 쓰고 누워있더라.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 끼고 누워있으면 진짜 지상천국일 듯. 뭐 아마 다음에 가면 다 지어놔서 상관없을 듯. 새로 지은 건물도 대충 호텔일 테니까 거기 가도 되지 뭐 ㅎㅎ
#. 그 외 호텔 내부 전경
초록이 많아서 좋은 호텔이었다.
우리 방도 네모 발코니 안쪽에 위치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게도 우리는 살짝 바깥쪽 방이라서 매일 문 열고 나올 때마다 이 예쁜 광경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없었지만, 그래도 조식 먹으러 가면 눈 가득 초록초록을 담을 수 있어서 평온하고 좋았다. 한 여름이 아니라 그랬겠지만 모기나 날벌레도 없고 쾌적했음.
또, 호텔 로비를 들어설 때마다 느껴지는 특유의 향기와 함께 정면에 가득 찬 꽃 장식, 태국 높으신 분들이 꽤나 오르내렸을 것 같이 생긴 중앙 계단과 그 뒤로 꽉 들어찬 벽화까지 보고 나면 내가 지금 남의 나라 새로운 문화가 녹아있는 곳에 서 있구나 싶은 기분이 물씬 들었다. 브랜뉴 모던 신상 호텔도 좋지만, 이렇게 ‘다른 곳’이라는 느낌이 충만해지는 경험을 매일 아침저녁으로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자 한국인 아무도찾지 않는 아난타라 시암 호텔 예찬이 끝났다.
랏차담리역 도보 40초, 시암역과 칫롬역까지 도보 10분, 교통 편리하고, 이국적이면서도 깔끔 편안한 가성비 호텔을 찾으신다면, 아난타라 시암 호텔로 가세요.
+ 근데 체크인 때 카드로 보증료 8천밧 결제했는데 빨리 결제취소해줘라 이놈들아. (워킹데이 기준 체크아웃 날로부터 15일 이내 취소해준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