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활자잔혹극 - 루스 렌들

2024. 11. 29. 11:17my mbc/bouquin



p.6 유니스 파치먼이 커버데일 일가를 살해한 까닭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이다.

발문: 문맹과 문해 사이 - 장정일
p.323
흔히 문맹이라면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상태만을 떠올리는데, 이 작품을 쓴 루스 렌들의 통찰에 따르면, 문맹은 그 당사자의 ‘상상력과 감정’마저 문맹의 상태로 만든다. 작가는 유니스를 가리켜 “그녀가 문맹이라는 사실은 그녀의 동정심을 앗아갔고 상상력을 위축시켰다. 심리학자들이 애정이라고 부르는, 타인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은 그녀의 기질 안에서 설 자리가 없었다“라고 평했던 바, 문맹은 인간에게 필요한 자신감과 자긍심을 빼앗고, 정상적인 인간관계와 소통을 기피하게 만든다.

p.326 (…) 활자잔혹극이 뛰어난 이유를 요약해서 말하면, 먼저 문맹이 결과하는 사회생활의 기술적 곤란만 아니라, 문맹이 인격 형성에 미치는 피해를 보여준 점이다. 그리고 거기 머물지 않고 글을 읽는 독자들이 활자와 책에 대한 턱없는 신뢰와 교만을 피할 수 있도록, ‘독서광’의 비인격적인 실례마저 함께 보여준 데에 있다.


추리소설인데 맨 첫 문장부터 범인과 범행동기를 밝혀버린다고 해서, 도대체 왜 어떻게? 라는 마음으로 선택한 책.

다 읽을 때까지는 몰랐는데 이제 와서 보니 루스 렌들은 아가사 크리스티를 잇는 추리소설의 대가라고 하고, 이 책은 무려 1994년에 발간됐다. 범인이 누군지 아는 상태에서, 범인을 옹호하기 위해 서사를 부여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우리의 냉랭하고 건조한 주인공 유니스 파치먼이 그러하듯, 일어나는 일들 지켜보고 서술할 뿐인 이 새로운 스타일이 2020년대에 등장한 최신 추리소설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는데 30년 전 글이었다니!  

루스 렌델은 추리소설이 단서 엮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대상, 사회 문제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데, 듣고보니 이 글에는 계속 곱씹고 생각해보게 만드는 메시지가 들어있었던 것 같다. 문맹인 주인공이 보고, 듣고, 받아들인 세상의 면면은 나의 짧은 식견으로 상상 가능한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judgment in stone이라는 다소 난해한 원제가 ‘활자잔혹극’으로 번역되면서, 한글 제목이 주는 첫 인상은 어딘가 유쾌하기까지 했는데, 다 읽고나서 생각해보니 활자란 무엇이길래 주인공의 삶 자체가 이토록 잔혹했는지.

결론부터 읽었는데도 다음이 궁금해서 아주 쑥쑥 잘 읽히는 글. 추리소설을 좋아해도, 안 좋아해도 추천.

24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