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 유시민

2024. 12. 10. 13:30my mbc/bouquin


p.71
현재 시점 국힘당의 주권자는 당원이 아니라 윤석열이다. 총선 참패를 자초했는데도 국힘당 국회의원과 당원들은 변함없이 그에게 복종한다. 21대 국회가 임기 종료를 앞두고 의결한 채해병 특검법을 윤석열은 또 거부했고, 국힘당 국회의원 대다수가 재의결에서 반대표를 던져 부결 폐기했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을 비판하는 당원은 거의 없다. 소수의 해병대 출신 당원이 탈당했을 뿐이다. 21세기 민주공화국의 집권당이 권력자의 사조직으로 전락했다. 말이 되지 않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p.147
그는 위험한 스타일의 권력자다. 사악한 권력자보다 어리석은 권력자가 더 위험하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스스로는 현자라고 확신한다.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위하는 것을 무시하고 정바대 선택을 주저 없이 한다. 비판하는 사람을 표적으로 삼아 가족과 주변까지 괴롭힌다.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 해서는 안 될 짓을 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고 만족감을 느낀다.

p.245
이념을 배격하면 정치가 사라진다.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우리 사회가 어떤 목표를 추구해야 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목표를 이루어야 하는지 말할 수 없다면 정치인 자격이 없다. 목표도 없고 방법도 모르면서 누구를 어디로 데려가겠다는 말인가. 이념이 없으면 정책도 정치도 없다. 이념을 가리지 않고 청년을 정치에 진출시키는 것은 영업이지 정치가 아니다.

p.287
4050 세대는 ‘젊은 벗’으로 여긴다. 그리 어렵지 않게 대화할 수 있다고 느낀다. 젊은 벗들한테 말하고 싶다. 그대들이 앞으로 40년 한국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그대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지적 문화적 역량이 희망의 크기를 결정한다고. 그대들이 다음 세대의 존경을 받는 어른이 되었다면 대한민국은 사람 살만한 세상이 되어 있을 거라고.


손석희의 질문들에 유시민과 한국일보 김희원 기자가 출연해서 레거시 저널리즘과 유튜브 저널리즘에 대해 토론하는 걸 봤는데, 토론 내용을 떠나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유시민의 표정? 인상? 그 자체였다.

<내가 그동안 있는 힘껏 외쳤고, 설득했고, 기대하고, 노력했다. 정말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지만 이젠 다 소용 없다는 걸 알았고, 이제 나는 너무 지쳤고 피곤하다.> 이런 느낌?

요즘 들어 트위터에서 언급되는 ‘지친 좌파상’이 바로 저것일까.

그러던 중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해서 구매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제는 지쳐버린 그의 아주 개인적인 생각은 무엇일지 궁금해서.

읽는 내내 아 이분은 진심으로 이 무식하고 무능한데 위험하기까지 한 대통령의 존재를 우려하는구나 느꼈다. 그리고 나는 그냥 느낌적인 느낌으로 싫어할 뿐인데, 이 나의 감정이 사실은 지나온 모든 선거와 지지율 데이터, 대통령의 말과 행동으로 다 해석될 수 있는 것이었구나 생각하니 참 사람은 똑똑하고 볼 일이다 싶었다.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 사태 이후에 유시민의 발언들을 찾아보게 된다. 손석희 질문들 때보다 나라꼴은 훨씬 심각한데, 정작 그의 얼굴에서는 피곤하고 지친 기색이나 어떤 경멸의 느낌 같은 게 많이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이 정신 나간 계엄령이 시작된 직후부터 매일 같이 거리에 쏟아져나와 지켜보고 있는 무수한 국민들이 어쩌면 서로를 보면서 조금씩 기운을 주고 받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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