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기록 - 영화 우리가 끝이야, 저스틴 발도니 감독 (it ends with us, 2024)

2024. 12. 16. 16:53my mbc/cinéma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
트위터에서 영화의 거의 마지막 핵심 부분의 짤을 스포 당했는데, 내용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영화 제목을 기억해두고 있다가 넷플릭스에 올라오자마자 봤다.

일단 배우들 얘기부터 하자면,

무엇보다 블레이크 라이블리 너무 예쁘다는 것부터 말해야겠음. 나오는 내내 옷도 너무 예쁘게 입고, 무엇보다 미소가 너무 예쁨. 근데 그 미소가 진짜 기쁜 미소인지, 자기방어에서 나오는 미소인지 구분해가며 연기하는 디테일에 감동 받음.

그리고 남주이자 감독인 저스틴 발도니가 너무 전형적인 섹시 미남이고, 또 다른 남주인 브랜든 스클레너 또한 다른 의미로 미남이어서 캐스팅이 너무 찰떡이었다고 생각함.

영화는 블레이크 라이블리가 연기하는 릴리(심지어 성은 블룸)의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의 기억을 잠깐씩 회상해 가면서 진행되는데, 고등학교 시절 주인공들의 아역을 맡은 두 배우가 처음엔 AI로 재현해 본체가 연기한건가 싶을 정도로 어른 배우들이랑 분위기가 비슷해서 깜짝 놀랐음. 여기서도 다시 한 번 캐스팅의 성공인 부분.

릴리 베프로 나온 배우 제니 슬레이트와 그 남편 역할 배우도 너무 찰떡같이 잘 어울렸다.


#.
영화의 전반부터 거의 중반부까지 우리는 주인공 릴리 블룸이 우연한 기회에 라일이라는 남자를 만나 아주 조심스럽게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이 두 남녀 주인공이 너무 핫해서 내가 지금 섹스 앤 더 시티를 보는건지 뭔지 헷갈릴 때 쯤 되면, 우리는 그녀가 고등학교 시절 겪었던 가정 폭력과 그 때 그 아픔을 함께 나눈 소중했던 남자친구 애틀라스의 존재도 알게 된다.

그리고 영화의 끝으로 가면서, 그녀에게 너무나도 완벽한 사랑이었던 라일이 사실은 건강한 관계를 이어가기 어려운, 어딘가 상처 받고 망가진 채 성인이 되어버린 사람이었단 사실을, 릴리가 그 관계 속에서 깨달아 나가는 속도로 천천히, 힘들게 받아들이게 된다.


#.
생각해보면 라일의 다른 면을 알아챌 수도 있는 어떤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긴 시간을 들여 사랑이라는 감정을 만들어왔는데, 무심코 지나친 찰나의 그 순간이 영영 반복될 수도 있다는 걸 그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

릴리가 각성하게 된 마지막 사건에 이르기 전까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지금 릴리가 겪은 폭력이 사고였는지 아니었는지 관객들도 판단할 수 없다. 그녀가 혼란스러운 것이 그저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아니면 실제로 지금 다분히 고의적으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연출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영화를 보기 전에 스포일러 당했던 장면은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 릴리가 라일과 헤어지기로 결심하고 그의 눈높이에 맞춰 자신의 결정을 이해시키는 장면이었는데, 그 직전까지 라일이 보여줬던 불안정한 모습들이 떠올라서, 막상 그 장면은 매우 정적이고 고요한데도 끝없이 불안함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저스틴 발도니의 인터뷰를 찾아보니, 그는 가정폭력 가해자를 떠나지 못하는 여성 피해자에게 너무나도 쉽게 비난의 화살이 향하는 불공평한 사회에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 

저렇게나 마초적인 전형적인 남성적 외모를 가지고, 은은하게 옥죄어오는 데이트 폭력남을 연기했으면서, 어떻게 저런 페미니스트 같은 발언을 했지? 하고 계속 찾아보니까 그냥 그는 페미니스트였음. 

 

무려 6년 전에, 왜 내가 '충분히 남성 답기'를 그만뒀는지에 대해 고찰하는 그의 TED 강연이 인상적이어서 남겨둔다. 

 

사회가 강요하는 '남성성'을 추구하느라 억지로 노력하는 대신,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 여성의 편에서 같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만큼 '용감한' 남성이 돼자고 남자들을 설득하고, 격려하는 내용이다. 

 

 

 

#. 

이런저런 인터뷰를 찾아보다 보니, 막상 미국 할리우드에서는 원작 소설과 소설가에 대한 찬반 의견도 엄청 대립각을 세우고 있고, 감독이었던 저스틴 발도니와 제작으로 참여한 블레이크 라이블리 간에 불화설도 있고, 실제로 둘이 같이 영화 인터뷰를 하러 나온 장면은 전혀 없다고 하니, 참 세상은 알 수 없다. 

 

 

그래도 나는 꽤 울림 있게 본 영화였음. 

 

 

+ 그나저나 한글 제목이 '우리가 끝이야'라니... 영어로 it ends with us 라고 하면 뭔가... 이 가정폭력의 대물림과 굴레를 더 이상 내려보내지 않고 여기서, 내 선에서 끝낸다... 이런 느낌인데... 번역이 이게 최선이었나.

 

+

그의 테드 강연에서 본 바하이 종교인 압둘 바하의 한 줄도 같이 남겨둔다. 

"두 개의 날개가 인류를 소유하고 있는데, 남성과 여성이다. 이 두 날개가 동등한 힘을 갖지 않는다면, 그 새는 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