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도키, 뉴욕

2010. 2. 2. 18:00my mbc/cinéma

시네도키Synecdoche.

아무리 읽어봐도 그 뜻이 명확하게 와닿기 보다는,
이렇게도 들렸다가 저렇게도 들리는 이 어려운 단어와도 같은 영화.


#.
이터널 선샤인의 각본가 찰리 카우프만의 감독 데뷔작이라더니,

시공을 넘나드는 환타지스러운 그 독특함이 잔뜩 배어난다.


주인공 케이든이 만드는 연극 속의 삶과 실제의 삶의 경계가 뒤엉키는 이야기라더니,
내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훨씬 묘하게 뒤엉켜 도무지 풀어낼 수가 없다.

애초에 케이든이 존재하는 현실 자체가 초현실적으로 묘사되어,
그 안에서 이야기가 한 번 더 꼬이기 시작하니 정말 끝이 없는 느낌.



#.
영화 팜플렛에 적힌 한줄평에서는,

보고나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진다고 했고,
전적으로 유쾌하고, 시적이며 심오하다고도 했다.

난 아무와도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혼자 보러 가서 다행이었지)
전적으로 우울하고, 시적이며 심오했기 때문에.


아, 미리 기억해냈어야 했는데.
이터널 선샤인을 보고 받은 가슴 벅찬 그 느낌 뒤에 따라왔던 먹먹한 우울함을.



#.
어린 딸의 일기장.
불타고 있는 집.
아내가 그린 그림들.
꽃잎이 지는 문신.
아버지의 그림자.
끝나버린 책.
발작.
한 움큼의 알약.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 기이한 장치들이 연속적으로 나타나,
영화를 보는 내내 나를 뒤흔들어댔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영화 밖에서 이해하려고 하면 너무 어려워서 알아들을 수가 없고,
영화 안에서 받아들이려고 하면 너무 우울해서 인정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미친 능력을 가진 감독의 영화를 볼 수 있다니,

놀랍도록 감동적이다.




#.
인생의 처절한 실재를 보여주는 그 한 편의 연극을 위해 평생을 소진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술 약속 노는 약속 너댓개 줄여서 겨우 뽑아낸 극소량의 시간에,
자아성찰이니 미래탐구니 하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놓고 '생각하는 척' 하던 내가 좀 웃겼다.


영화 속에서 급격하게 늙어가던 그가 나에게 말한다.

있잖니,
이렇게 모든 걸 다 갖다부어도 모르는 게 인생이야.

라고.




#.
죽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케이든은,
영화 내내 무려 다섯 명이나 먼저 떠나보냈다.


#.
배우가 영화 속에서 늙는다.

마치 정신차려보니 한층 더 늙어 있는 내 얼굴을 발견할 때처럼,
배우들이 굉장히 자연스럽게 늙어있어서 깜짝 놀랬다.

뭐야 어떻게 한거지.
벤자민 버튼의 마법.



#.
연극 속에서, 혹은 현실 속에서,
서로의 역할이 계속해서 뒤바뀐다.

나는 나인데 타인을 연기하고 있고,
타인이 연기하는 내 모습에 누군가는 상처를 받는다.

나는 내가 연기하던 그 사람의 기억에 의해 움직이다가,
연기하지 않을 때에 그 사람이 되어 있다.



아아.
이런 식으로 백 개의 문장 쯤을 적어야 영화 내용이 정리가 되려나.


10.02.02
씨네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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