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웨어

2011. 1. 12. 22:24my mbc/cinéma






#.


난생 처음 혼자 영화관에 가서 본 영화가,


아마도 대학교 1학년 때 종로 베니건스 위에 있었던,


이제는 사라진, 씨네코아에서 보았던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였다.





잔잔한 독백 같은 영화.


불투명한 불빛들이 아른거리는 영화.


콕 찝어 이야기해주진 않지만,


아주 조용하게 나에게 말을 거는 영화.





그 때의 기억이 나름 선명하여,


그녀의 새 영화를 망설임 없이 선택했고,





이번에도 그녀는 마치 그 때처럼 나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


헐리웃배우 아버지와 열한살배기 딸내미가 보내는 비터스윗한 일종의 휴가.





이 부녀 사이에 알게 모르게 존재하는 간극을 메꾸어주는 엄청난 일이 벌어져서,


부녀가 얼싸안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거나 하는 그런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그냥 둘이서,





게임을 하고,


아침을 먹고,


서로의 기분을 살피고,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면서,





함께 시간을 보낼 뿐.











#.


딸이 없을 때 이 남자는,





드라이브를 하고,


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태웠다.





파티가 열리고,


여자를 꼬시고,





담배를 태우고,


맥주를 마시고,


샤워를 했다.





인터뷰를 하고,


담배를 태우고,


드라이브를 했다.








영화는,





멀리서부터 아주 천천히, 그의 호흡에 맞추어, 그에게 다가서거나,


아주 가까이에서 그의 옆 모습에 시선을 고정하거나,


그의 시선을, 혹은 달리는 그의 차를 좇아, 그저 따라갈 뿐.





더 이상의 어떤 부연설명도 붙이지 않는다.


#.
물론 헐리웃배우로서 그가 마치 틱 처럼 가지고 있는 버릇들,
그에게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들에 대해서 보여주는 작은 장면들,
그로 인해 흔히 예상할 수 있는 화려한 배우의 삶과 대조되는 그의 모습이 더욱 강조되긴 하나,

그가 극중에서 꼭 배우가 아니었다고 해도,
이런 외로운 인생은 꼭 그만의 이야기가 아니기에 나는 부녀 관계에 중점적으로 빠져들게 됐다.

#.
영화를 보다 생각했던거 하나, 깜빡했는데,
우아한 세계에서 송강호가 라면 집어던지던 장면이 생각났다.

비슷한 상황은 아니지만 비슷한 감정일거라고 생각.



 





#.


그래서일까,





별 것도 아닌 부녀의 대화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고,


별 다를 것 없는 그들의 눈빛을 따라 마음을 읽으며,


그렇게 그 두 사람의 관계를 파악해가던 나는,





처음으로 남자가 딸에게 진심을 담아 입을 열었을 때,





조금은 가슴이 아리면서도,


그게 그렇게 와닿을 수가 없었다.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게 아니다.





이것은,


어떻게도 끝나지 않았지만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과장법 없이도,


이미 충분히 드라마틱한 우리네 삶을 파헤치는 소피아 코폴라의 화법은,


남자의 마지막 미소처럼 그렇게 말 없이 전해지는 잔잔한 맛이 있기에,





그렇게 비터스윗.











#.


늘씬한 기럭지와 난데없는 들창코가 알 수 없는 조화를 이루는 엘르 패닝.


개인적으로 아직은 잘하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조금 더 두고봐야지. (내가 왜?)





13/01/11


@UGC les halles


'my mbc > ciném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이 엠 러브  (2) 2011.01.16
마루 밑 아리에티  (5) 2011.01.16
투어리스트  (6) 2010.12.28
버레스크 + 온 투어  (8) 2010.12.21
쓰리데이즈  (0) 2010.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