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는 비행기 안
2011. 3. 20. 14:29ㆍjournal
오늘 하루,
공항 가는 길부터 비행기 타기 직전까지 너무 정신없이 지나가서,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내가 비행기를 타는건지,
이 비행기가 한국으로 가는건지,
한국에 도착하면 여기에 언제 다시 돌아오긴 하는건지.
정말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열 시간이 넘는 비행은 타임머신과도 같다.
몇 시간이 흘렀는지, 어느 곳의 시간에 시계를 맞춰야 하는지,
낮밤없는 비행기 안에서 그렇게 감을 잃어갈 때 쯤,
내가 있던 곳 전혀 반대편에 도착해버리고,
공항 게이트를 나서면서부터는 지난 일 년의 시간이 마치 한 순간의 꿈처럼,
앨범 한 페이지 넘기듯이 그렇게 넘어가버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같이 한 시간은 너무 짧은데,
못 보고 지낼 시간이 너무 길어서.
나는 이렇게 별 다른 말 못 한 채 가버리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앨범의 한 페이지를 넘기고 나면,
과연 다음 장, 또 그 다음 장의 어딘가에서,
같은 장소, 같은 사람,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나 이미 다 커버린 채로 후랑스에 다시 와 버린 건 어쩌면 실수였을까.
이젠 어떻게 그 곳에 다시 갈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큰 일이 되어버린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거라 얘기하는거,
이제보면 꽤 잔인한 면이 있구나.
18/03/11
비행기 안에서.
언젠가는 내가 없어도 괜찮아질테니까,
시간이 지나기만 기다리면 된다고,
내가 지금 여기 이 곳에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저기 저 곳에 내가 있던 자리가 그대로인 걸 뻔히 알면서도,
시간이 지나서 스물스물 잊혀지기만을 기다리면 된다고.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기억이 지워지는 것 같은 이런 기분으로,
어떻게 계속 버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