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파과 - 구병모
2020. 8. 4. 08:30ㆍmy mbc/bouquin
p.193
최고의 시절에 누군가의 입속을 가득 채웠어야 할, 그러지 못한, 지금은 시큼한 시취를 풍기는 덩어리에 손을 뻗는다. 집어 올리자마자 그것은 그녀의 손 안에서 그대로 부서져 흘러내린다. (...) 그녀는 문득 콧속을 파고드는 시지근한 냄새를 맡으며 눈물을 흘린다.
구병모 작가의 위저드 베이커리를 읽고, 꼭 그녀의 다른 작품도 찾아 읽겠다고 다짐한지 3~4개월 만에 선택한 두 번째 작품.
이 책은 살인청부업체에 몸 담고 있는 노년의 여성 화자, '조각'의 이야기이다. 이 할머니(...라고 부르면 칼 맞을 것 같지만, 이제 여러모로 본인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분)의 이야기는 모든 구절, 모든 챕터가 너무 새롭고 흥미진진해서 진짜 엄청 집중해서 읽었다.
그녀가 일하거나 상대를 대하는 장면 하나하나가 영화처럼 눈 앞에 그려지도록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었고, 액션만큼이나 섬세한 감정선도 너무 잘 표현되어 있었다.
게다가, 내가 이 나이대의 (은퇴를 앞둔) 직장 여성 이야기를 읽어본 적이 있었던가?
유독 늙는다는 것이 부쩍 두려워진 요즘의 나에게 어떤 의미에서의 롤모델 같은 주인공을 만난 책.
뭔가 더 자세한 감상을 풀어내고 싶지만, 사실 읽은지가 좀 되기도 했고, 요즘의 난 소설책 감상을 써내는 능력을 상실한 것 같다.
너무 매력적인 글이었다.
좋았어, 구병모 작가 3회차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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