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어린이라는 세계 - 김소영

2021. 5. 9. 18:04my mbc/bouquin

p.156 

"이 막 흔들려 가지고 마지막에 거의 다 됐을 때 엄청 떨리는 거, 선생님도 알죠?" 

"기억하세요?"가 아니라 "알죠?"다. 나도 당장 아홉 살로 돌아가 "당연하지!"하고 맞장구를 쳤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내가 마지막으로 뺀 이는 사랑니로 그것도 십수 년 전이고 마취도 했었지만, 어쨌든 겁에 질렸던 건 마찬가지니까. 

 

p.190

규민이가 나한테 과자를 줄 때 잘 하는 말, "이거 꼭 먹으세요"는 어떤가. "드세요"보다 "먹어"가 훨씬 강력한 요구다. 상대에게 맛있는 걸 꼭 먹이겠다는 굳은 의지는 존댓말로는 잘 표현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규민이의 "먹으세요"가 너무 좋다. (...) 어른들은 흔히 "애들을 위해서 말을 가린다"라고 하는데 어린이야말로 말조심을 한다. 존댓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서열을 파악하고 어휘를 고르고 감정을 조절하는 일이다. 경험은 어른보다 적은데 책임은 어른보다 많이 져야 한다. 우리 어린이들이 어른들 보아 가며 말하느라 참 고생이 많다.

 

p.209 

'세련된 노인'이나 '깨끗한 남성', '목소리가 작은 여성'만 손님으로 받는다고 하면 당장 문제라고 할 것을, 왜 어린이는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차별하는 걸까? 중요한 차이가 있긴 하다. 그들에게는 싫은 내색을 할 수 없고, 어린이 그리고 어린이와 함께 있는 엄마에게는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약자 혐오다.

 

p.218

사회가 여성에게 "아이를 낳아라"하고 말하면 안 되는 것처럼, 우리도 "아이를 낳지 말자"라고 받아치면 안 된다. 사회가 아이를 가질 자격이 없으니 주지 않겠다고, 벌주듯이 말하면 안 된다. 이 말은 곧 사회가 자격이 있으면 상으로 아이를 줄 수도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런 것이 아니다. 어린이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 그리고 이 말은 결국 어린이와 양육자를 고립시킨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을 오로지 개인의 문제로 만든다. 아이를 낳지 않은 사람은 책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이 이야기가 약자를 배제하자는 결론으로 향하는 것이.

 

 

#.

주식, 골프, 요리 등 어떤 분야에 처음 도전하는 어른들을 흔히 'O린이'라고 부르는데, 언제부턴가 이 표현은 언론, 방송은 물론 수많은 기업 SNS 콘텐츠와 개인들의 해시태그를 도배하게 되었다.

 

솔직히 홍보마케팅을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써, 어떤 유행하는 키워드를 SNS 콘텐츠에 사용하지 않는 것은 기만이자 태만으로 느껴질 수 있음을 매우 잘 이해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자기검열을 거치고, 그것을 상부에 이해시키기까지 하려면 그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닐 것이고) 내 주변에서 다 재밌다 요즘 다 이런 말 쓴다 하면, 오 그래 그런말이 있어? 하면서 한번쯤 써보는 것이 뭐 그렇게 나쁜가.  

 

나쁜 것은, 그런 유행이 삽시간에 번져나가는 동안, 다른 한켠에서 문제를 제기할 때 그것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것을 불편해 하는 것이다. 그것을 못 본 체 하는 것이다. 

 

당연히 나만의 트위터 세상에서는 애진작부터 'O린이'가 어린이에 대한 차별적 표현이라는 의견이 들끓어 오르고 있었지만 전혀 바깥 세상에 영향을 주지 못하다가, 최근 어린이날을 기점으로 그 중 일부가 일반 언론에서 기사화되었는데, 이것이 그냥 어떤 불편러들의 예민함 정도로 치부되어 버리는 것 같길래 작년에 읽고 리뷰를 안 남긴 채 넘어갔던 책을 끄집어 내 본다. 

 

#.

김소영 작가는 어린이 독서교실을 운영하면서 만난 아이들과의 에피소드를 풀어내며, 본인의 깨달음을 우리에게 공유하고자 한다. 재미있고, 따뜻하고, 뭉클하고, 귀여운 에피소드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거기서 항상 (어른이면서도) 깨달음을 얻는 김소영씨의 열린 생각이 너무 부러웠다.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다 열거해도 모자라고, 이 책을 다 옮겨 적어도 모자랄만큼, 배울 것이 많았다. 재미있게 읽는 동안 여러 번 가슴이 짠했다. 

 

#. 

이제 막 초딩이 된 조카의 영유아 시절부터 지금까지를 돌이켜보면, 어린이는 정말 그저 '작은' 인간일 뿐이다. 

 

몇십년 산 어른들에 비해 지식의 절대량은 적을지 몰라도, 본인이 가진 지식에 대한 소화력은 여느 어른 못지 않은데다 사고의 깊이 또한 절대 얕지 않다. 어른들의 뇌가 몇 안 되는 종류의 지식으로 재미없게 채워지는 동안, 아이들의 뇌에는 지식과 상상력, 창의력이 버무려진 어떤 무지개 같은 것이 흐른다. 

 

그런데 우리가, (어른이면서도) 무엇을 잘 모르는, 이제 막 시작한, 서투른, 배움이 필요한 존재를 꼭 어린이에 빗댈 필요가 있을까.

 

#. 

어린이는 미숙하기 때문이 아니라, 어른에 비해 (물리적/경제적/심리적) 힘이 약하기 때문에, 법과 체제에 의해 보호되어야 하고, (기득권자인) 어른들의 배려와 존중이 필요하다. 

 

공식적/전문적인 소스를 찾아보고 배운 것은 아니지만, 외국 드라마나 영화, 흘러가는 인터넷 뉴스 같은 것들만 보더라도 어린이를 보호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나라들에 비해 우리나라의 아동 인권이 바닥 수준이라는 것은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다른 (어른)손님들과 영업자를 위한 선택이라며 노키즈존을 만들고, 또 그들을 옹호한다. 유흥업소에서 몇백명씩 코로나19를 옮기는 동안 어린이집, 유치원은 문을 닫고, 아이들을 서로 떨어뜨리고, 하루종일 마스크를 씌운다. 

 

왜냐면, 그렇게 해도 아이들은 들고 일어날 힘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말을 잘 듣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가르치고 규제하는대로 따르기 때문이다. 그것이 너무나 쉽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어린이들은 조금 더 소중한 존재로써, 어른과 동등한 작은 인간으로써 대우 받아야 한다. 

 

#. 

즐겨듣는 팟캐스트에서 두 어린 자녀를 둔 진행자가, 어린아이와 놀아줄 때 어른들만 알아듣고 웃을 수 있는 장난과 농담을 하는 것이 나쁘다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아주 뜨끔했다. 실제로 내가 어린 조카랑 놀아줄 때, 그 옆에 있는 어른들이 듣고 웃을 수 있는 농담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조카는 뭐가 웃긴 포인트인지도 모르고 그냥 이모랑 놀고 있을 뿐이었지만,  나는 어른들 세상에서 인정 받고자 하는 욕구 때문인지 '조카랑 놀아줄 때도 재치있는 농담을 하는 나'에 도취되어 곧잘 그렇게 아이를 놀려먹곤 했던 것이다. 

 

그 뒤로는 조카를 대할 때, 내가 진심으로 이 아이와 온전히 커뮤니케이션 하고 있는지, 혹은 주변의 어른들을 의식한 언행을 하고 있는지 자주 돌아보려고 노력한다. 

 

동네 어린이들을 마주할 때도 항상 결례를 범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사실 처음 만난 (누가봐도 너무 작고 귀엽고 해맑은) 어린이들에게 존대를 하고, '어른이 아이보듯'이만 대하지 않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래도 나는 계속 노력할 것이다.

 

어린이들은 어른을 똑같은 인간으로 대하는데, 어른이 역으로 행동하는 게 뭐 그렇게 어렵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