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bc/bouquin(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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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 김영하
아침에 눈을 떴다. 낯선 곳이었다. 벌떡 일어나 바지만 꿰어입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처음 보는 개가 짖어댔다. 신발을 찾으려 허둥대다가 부엌에서 나오는 은희를 보았다. 우리 집이었다. 다행이다. 아직 은희는 기억에 남아있다. #. 연쇄살인범으로 살아온 남자가, 하필이면 치매에 걸린 인생의 마지막 시점에, 자신의 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으로 추정되는 다른 연쇄살인범(심증100%) 때문에 고군분투 하는 내용.#. 솔직히 읽은 지가 너무 오래되놔서, 이거 읽고 나서 어떤 느낌이었는지 다시 되돌리는 건 쉽지 않지만, 뭔가 굉장히 빠른 시간에 훅훅 읽히는 엄청난 집중력이 절로 발휘되면서도, 읽고 나서 내가 뭘 읽은건가 싶으리만큼 쉽지 않은 전개는 아마도 김영하의 매력. TistoryM에서 작성됨
2014.09.09 -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 요나스 요나손
알란은 잠시만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은 잠에서 방금 깨어난 상태라 생각을 조금 정리해 보고 싶으니 반장님이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는 거였다. 일의 결과를 신중히 따져 보지도 않고 친구들을 마구 넘길 수는 없는 노릇 아니오? 반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는지? 늘 그렇듯, 표지가 귀엽고 제목이 귀여워서 선택한 책. 처음에는 어딘가 이상하고 거추장스러운 문체가 부담스러웠는데, 읽다보니 그냥 익숙해져서 그 다음부터는 이야기에 온전히 빠져들게 됐다.스페인, 미국, 중국, 프랑스, 발리를 넘나들고, 마오쩌둥이라느니 김정일이라느니 아인슈타인의 남동생이라느니 하는 사람들과 연을 맺고, 폭탄이니 전쟁이니 냉전이니 하는 것들을 겪으면서도,양껏 마실 수 있는 맛있는 술만 있다면 바라는 게 없는, 언뜻 평범해 보이는..
2014.03.20 -
첫 문장 못 쓰는 남자 - 베르나르 키리니
또한 그 전염병은 유럽 각국의 문단에 온갖 사기와 기만의 종말을 알렸다. (...) 진정한 천재로 인정 받아 온 몇몇 사상가들은 아무리 위로 치솟고 싶어도 지면에 발이 들러붙어 옴짝달싹 못하는 반면, 이름도 생소한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하늘 높이 떠오르곤 했다. - 높은 곳 총 16편의 단편집.아주 조금만 정신을 놓아도 뭐가 뭔지 뒤죽박죽 되어버리는 고난도의 궤변인 것 같은데, 조금만 정신 차리고 다시 보면 꽤나 정확한 논리를 바탕으로 한다는 게 놀랄 일.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글들이나, 이적의 지문사냥꾼 같은 느낌의, 허무맹랑한데도 논리적이어서 읽다보면 믿게 되는, 소재는 가벼운데 주제는 무거운 그런 글들.주로 베르나르 이름 가진 사람들이 좀 상상력이 뛰어난가봐-_- 인상적인 포인트 및 특히 마음에 든 글..
2013.01.23 -
사랑의 기초_한 남자 - 알랭 드 보통
느낌에 충실해 결혼해야 한다는 관점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참되고 솔직한 감정에 경의를 표한다. (...) 이런 감정들 하나하나를 다 존중한다면 일관성 있는 삶을 영위할 가능성은 사라진다.때때로, 아니 어쩌면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진정성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살아나갈 수가 없다. 아이들의 목을 조르고 싶다거나, 배우자의 잔에 독을 타고 싶다거나, 전구를 가는 것 때문에 싸우고서 이혼하고 싶다거나 하는, 스쳐 지나가는 충동들에 진심을 발휘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벤은 자신과 엘로이즈가 감정에 너무 연연하지 않으며 하루하루 살아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로서의 결혼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역시나 어렵게 말하는 남자, 알랭 드 보통 씨. 벤이라는 한 중년 남자, 엘로이즈의 남편이자 두 아..
2012.07.10 -
사랑의 기초_연인들 - 정이현
연애의 초반부가 둘이 얼마나 똑같은지에 대해 열심히 감탄하며 보내는 시간이라면, 중반부는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를 야금야금 깨달아가는 시간이다. 급하게 몰아닥친 태풍은 어느새 그쳤고, 그 후에는 폭풍우가 쓸고 간 해변을 서서히 수습해가야 한다. (...) 다른 곳에서 발생해 잠시 겹쳐졌던 두 개의 포물선은 이제 다시 제각각의 완만한 곡선을 그려갈 것이다. 그렇다고, 허공에서 포개졌던 한 순간이 기적이 아니었다고는 말할 수 없으리라. 알랭 드 보통이랑 같이 쓰기로 했다가 그냥 독립된 이야기 두 개를 내놓기로 했다는, 정이현씨의 사랑의 기초 시리즈에 대한 인터넷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되어 찾아 읽었는데, 뭔가 아주 쉽게 빨리빨리 읽히면서도 그 정도의 가벼움이 전부는 아닌, 공감가면서 씁쓸한 글이다. 여..
2012.06.17 -
조용한 혼돈 - 산드로 베로네시
또 시작이다. 똑같은 일의 반복이다. 만약 비가 오지 않으면 ㅡ 지금은 오지 않는다 ㅡ 두 사람, 즉 딸의 학교 앞에 있는 사람과 그를 찾아온 사람은 정원으로 자리를 옮긴다., 정원에는 골드 레트리버 아가씨가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ㅡ 오늘 아침엔 보지 못했다 ㅡ 있다. 두 사람은 벤치에 앉거나 ㅡ 이번엔 앉아 있다 ㅡ 있다. (...) 만일 이곳에 와서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으며 날 괴롭히는 일이 사람들의 습관이 되고 있다면 , 나는 그들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날 더 이상 끌어들이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나는 나일 뿐 그들이 아니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고 있는 게 중요하다. 영화로 만들어져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했었다고 하는 '조용한 혼돈'은, 띠지에 나와있는 영화포스터를 보고, 만약 내가 있을 때 개봉..
2012.01.09 -
7년의 밤 - 정유정
소녀가 내 목덜미를 만진 건 네가 술래야, 라는 뜻이 아니었다. 네가 졌어, 벌을 받아야지, 라는 뜻이었다. 나는 영원한 술래였다. 잡지 못하면 벌을 받고, 잡으면 벌을 면하는 불공평한 술래. 언니가 혼자 읽으면 진짜 무섭다고 해서, 절대 출퇴근길 전철 안에서만 읽었는데, 뭐 그렇게까지 심하게 무섭지는 않았지만, 언니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 충분히 공감은 갔던 책. 문학 사대주의에 빠져있는 나로서는 실로 오랜만에 읽는 한국작가의 책이었는데, 이야기 자체는 (이야기의 배경이 꽤 예전 세대의 한국임에도 불구) 범세계적으로 읽혀도 손색 없을 만큼 세련된 편. 처음엔 주인공 이름이 자꾸 헷갈려서, (나도 늙었나봐 ㅠㅗㅠ) 좀 적응이 안 됐는데, 누가 누군지 한 번 싹 정리하고 나니, 몰입도가 백 배 상승. 살인으..
2011.09.16 -
골든 슬럼버 - 이사카 코타로
인간의 최대 무기는, 습관과 신뢰라고 했던 모리타의 말을 떠올린다. 야, 모리타, 그게 아니라 인간의 최대 무기는, 오히려 웃을 수 있다는 것 아닐까? 요새 읽는 책들이 하나같이 기대 이상으로 재밌어주시는 바람에, 지옥의 출근길을 그나마 버티고 산다. 골든슬럼버도 마찬가지. 범세계적으로 먹힐 만한 주제, 미미한 개인과 거대사회권력의 대치를 다루면서도, 그 안에 일본 특유의 감성이 느껴지는 부분들, 특히 주인공 아오야기와 그와 연루된 모든 사람들의 관계와 같은 것들을 녹여낸다는 것이 이 책의 매력. 요 근래 문제상황에 빠진 주인공의 고군분투 스토리를 자꾸 접하게 되는데, 난리통 속에서도 자신만의 센스와 기지를 잃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에 자꾸 빠져들게 된다. 영화로 이미 나와있다는데 내가 좋아하는 타케우치 ..
2011.09.06 -
빅픽처 - 더글라스 케네디
와인 한 잔을 더 마시고, 인화한 사진을 다시 꼼꼼하게 살폈다. 그밖에 다른 사진들에는 이전에 내가 품었던 자의식만 보일 뿐이었다. 그나마 다섯 장을 건질 수 있었던 건 내가 피사체에 사진가의 시각을 인위적으로 들이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피사체의 얼굴에 집중하고, 그 피사체가 프레임을 결정하게 내버려두면, 모든게 제대로 굴러간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와우. 정말 괜찮은 책이다. 팩트만 보면 피 튀기는 장르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은 우리네 인생사. 사진가의 꿈을 간직한 채 뉴욕 월스트릿의 성공한 변호사의 삶을 살던, 어찌보면 평범한 주인공이, 어쩌다 몬태나주 시골에서 발굴된 천재 사진가로서의 제 2의 인생을 살게 되었는가- 에 대한 이야기. 이야기는 주인공 일인칭시점으로 풀어나가..
2011.09.02 -
숨쉬러 나가다 - 조지 오웰
또 하나 고백할 것은, 열여섯 살 이후로 내가 다시는 낚시를 해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도대체 왜? 사는 게 그런 까닭이다. 우리네 인생에서(인간의 삶 일반이 아니라 바로 이 시대 이 나라에서의 삶이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지 못한다. (...) 그 일을 하기 위해 실제로 보낸 시간이 당신 인생에서 차지하는 몫을 계산해보라. 그러고 나서, 면도하고, 버스로 여기저기 다니고, 기차 환승역에서 기다리고, 지저분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신문 읽느라 보낸 시간을 계산해보라. 동물농장을 읽은 지가 십여년은 된 것 같다. 1984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에 만난 조지 오웰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숨쉬러 나가다'는 1939년 2차대전 발발 직전에 발간 된 소설로,..
2011.08.30